테스트용 공지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카모토 하야토/선수 경력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 [[파일:ea9a498114a1fb901016454751b66a61.jpg]] || || {{{#ffffff ▲ 左. 사카모토 하야토 / 右. 다나카 마사히로}}} || 초등학교 때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하며 야구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사카모토의 동급생이었다[* 일본 야구계에서 88년생 스타에는 이외에도 [[마에다 켄타]], [[야나기타 유키]], [[아키야마 쇼고]] 등이 있다. 이들은 '[[마쓰자카 다이스케]] 세대'를 잇는 일본야구 사상 최고의 황금세대로 평가받는다.~~하지만 한때 이들 중 최고 스타였던 [[사이토 유키(1988)|사이토 유키]]는...~~ ~~당시 대학 타자 중 최대어였던 [[이시미네 쇼타]]도...~~]. 같은 팀에서 뛰며 사카모토가 [[투수]], 다나카가 [[포수]]로서 배터리를 이루면서 활약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공수 겸비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위 지명받으며 입단했다. 원래 요미우리는 1순위로 도노우에 나오미치[* 1971~85년 주니치에서 뛴 투수 도노우에 테라시의 아들. 추첨 끝에 결국 주니치에 지명되어 3년 전 주니치에 먼저 지명된 형 타케히로와 함께 아버지의 팀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타케히로는 왼손 거포의 포텐을 10년간 터트리지 못한 끝에 2014년 주니치에서 방출되고 2016년 요미우리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고, 나오미치도 고교 시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아라키 마사히로]], [[이바타 히로카즈]], [[모리노 마사히코]] 등 주니치 왕조 시절의 기라성같은 노장들을 밀어내지 못했으며 나중엔 [[타카하시 슈헤이]], [[쿄다 요타]], [[아베 토시키]] 같은 뒷세대들이 치고 올라오며 결국 내야 유틸리티 요원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도노우에가 내야의 코어로 성장하지 못하며 주니치의 세대교체가 제대로 꼬인 것을 보면, 요미우리의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결과적으로 사카모토를 데려간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 된 셈. ~~그렇다고 딱히 요미우리가 세대교체를 잘 한것도 아니니 사카모토 못 잡았으면...~~] 등 다른 선수를 점찍었으나, 추첨에서 실패해 사카모토를 뽑게 되었다. 이때 사카모토를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이 바로 당시 도호쿠, 홋카이도 지역 스카우터 오오모리 타케시[* 1988년 드래프트 1위의 거물 대졸 타자 유망주였고 같은 해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 [[나카하타 키요시]]의 등번호를 물려줄 정도의 기대주였으나 [[2군 본즈]] 노릇만 하다가 킨테츠로 트레이드된 뒤 은퇴했다. 하필 드래프트 동기들에 [[노모 히데오]], [[후루타 아츠야]], [[마에다 토모노리]], [[신조 츠요시]] 등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이 많아 더욱 대비되었다. 야구 외에는 [[AKB48]] 멤버 [[오오모리 미유]]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져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